나의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했다. 그래도 그 신앙으로 우리 집안에 신앙이 들어오고, 유언 때 할머니가 외우신 사도신경이 우리 집안의 신앙고백이 되었다.
해방 당시 한국인의 약 80%가 문맹이었다. 그들에게 성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성경을 듣고 외우고 암송하고 실천했다. 문맹이라 4복음서을 다 외우거나, 신약을 통채 외우는 신자들도 있었다.
1919년 삼일운동 후 감옥에 들어간 교인들은 성경을 암송했다.
요한복음 14장 18-20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길선주 목사는 눈이 멀어 (한 눈은 안 보였고 다른 눈도 백내장 수술로 겨우 조금 볼 수 있었음) 계시록을 800독 하며 암송했다. 1장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후 수 많은 신자들이 감옥에서 성경을 암송하며 민족을 위해, 민주를 위해, 민중을 위해,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았다.내 삶의 어떤 자리에 함께 한 말씀, 한국 교회사의 어떤 시점에 함께 했던 말씀이라야 살아 있는 말씀이다.
Oral tradition에 살던 시절, 신앙이 더 좋았다. 성경 책이 없어지고 읽을 거리가 없고 보거나 들을 설교가 없는 상황에서,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노래, 말씀, 그것이 있는 자가 신자이다.
말씀을 마음에 담으라. 주어 먹으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흥얼거리라, 송하라). 새가 아침에 노래하듯 재잘거리라. 입 안에 말씀이 rock & roll해야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
ⓒ옥성득"외로운 자식같이 버리지 아니하고," 요한복음 14장 8절, <신약젼셔>,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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