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문서, 성서, 번역

[성경읽기 3] 여백 읽기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3

 

책을 펴면 본문 주변으로 여백(margin)이 있다.

그 여백과 본문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것만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책을 읽다가 우리는 그곳에 표시를 하거나 노트를 남긴다. 만일 루터나 칼빈과 같은 유명인이 소장하던 책에 그가 직접 남긴 메모가 있다면 그 책의 가치와 그 메모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16세기 구텐베르그 성경을 비롯해 성서가 인쇄된 후에도 여백에 천연색으로 정교한 그림을 그려 넣은 경우가 많다. 인쇄되기 전 수도원 수사들이 만든 필사본의 전통이 계승된 것이리라.

 

이런 외국어로 된 성경을 보는 우리나, 당대의 일반 평민들은 이런 성경을 볼 때 먼저 margin에 있는 그림부터 보았을 것이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새가 우짖는 소리를 먼저 들었을 것이다. 책 여백margin을 보는 이들은 사회의 변두리 margin에 사는 자들이다. 그들의 관점으로 성서 본문을 읽는 것을 주변부margin의 시선으로 보는 해석학이라고 한다.

여백과 주변을 보다가 보면 주변부 시선이 생긴다. 그래서 중세나 근대 성서에는 여백에 그림으로 된 상징 언어를 배치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상징미가 넘치게 했다.

여기 모든 이미지는 16세기 구텐베르그 성경들이다.

 
한국 교회는 본문에 치중한다. 그러나 외부인들은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여백의 문화를 본다. 그곳이 사람이 숨 쉴 만한 곳인가? 새 소리가 들리고 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지를 본다.

 

목사와 설교자는 본문에 치중한다. 그러나 외부인들은 그가 교회당을 나선 후의 여백 시간과 주변 시간에 어떻게 사는지를 본다.

왜 한국 개신교회가 메말라 가는가? 주변과 여백에 그림이 없고 삶의 적용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부의 시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여백에 들에 피는 백합화 향기를 채우고, 한 푼에 팔리우는 작은 참새 한 마리의 소리를 설교 시간에 들리게 하라. 마진에 사는 지극히 적은 자의 초상을 그려 넣고, 들풀과 같은 그의 이야기를 성경 본문 옆에 담아라. 본문 글자는 변하지 않더라도 주변 여백의 변화로 그 책은 더욱 읽을 만하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text와 context는 함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