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商在, “演說: 朝鮮靑年에게” (上)
원반: 제비 表朝鮮 레코드(Nitto) B143-A, 1927년 녹음 *국립국악원 제작, 한국고음반연구회 기획
이 음반은 1927년 일본 일동(닛토) 축음기회사의 한국 레이블이었던 제비표 조선레코드에서 당시 YMCA 총재였던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의 육성 음반을 취입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RXX7frivlQ&list=PLurmbV5BLY2Kiud5XqTKTlbjfjPi7YnAe&inde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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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선 청년에 대하여서 세 가지로 관념을 보는데,
첫째는 조선 청년에게 아주 극단으로 희망을 허는 게 있고,
둘째로는 조선 청년에게 시방 현상을 보고서 극단으로 비관하는 일이 있고,
필경 셋째로는 결국은 낙관하는 하나가 있다 그 말이여.
어째 조선 청년에 대해서 희망이 크다고 허는고 허니, 조선 청년은 도덕상 지식이 있는 청년이여. 본래 사천 년 내려오면서 습관이라든지 무엇으로 보든지, 길러 오기를 도덕심으로 길러 온 까닭에 그 지식이 도덕으로 자라나고. 그걸 무엇으로 짐작해 보느냐 하면, 시방 세계는 점점 악화돼 가서, 도덕이란 건 없어지고 모두 물질만 되는 까닭에, 물질이라는 것은 일상 남은 사랑하지 않고 제 이기적만 하는 까닭에, 시방 물질에 욕심해 가지고 세계는 점점 악화되어 가고. 해서 시방 현상으로 보더래도 심지어 육군이니 해군이니, 그 외에 총이니 칼이니 창이니, 바다 속으루는 잠함정이니, 공중에 나는 비행기니 하는 것이 그게 무엇이냐 하면, 조금도 백성에게 이익허는 걸 하자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기어이 남은 죽이고 나만 살자는 남은 해치고 나만 위하자는 그러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건 무엇으로 되어 나가느냐 하면, 물질로 되어 나가. 글로 보게 되면 조선 청년은 본래 어려서부텀 제 가정에서 훈계 받을 때부텀, 네 밖에 나가거든 남하고 싸우지 말아라, 남을 해롭게 말아라, 남을 해치지 말아라, 아무쪼록이 남을 도와주고 놀라, 네가 어려운 일이 있더래도 참고 남에게 해툰 노릇은 말라고. 항상 가정에서 부텀 가르쳐 논 까닭에 차차 차차 자라나서 자라날수록 그 마음이 자라나 가주구서, 필경에는 장성해 살지라도, 그 맘이 변허지 않는 그런 도덕심이 있어. 그건 하늘이 당초 품부해 준 그 도덕심이여.
헌 즉, 이 세계는 이렇게 악화되어 가는데 필경에 가서는 그 사람 죽이기 잘하는 사람과 사람 살리기 좋아 하는 조선 사람이란 게 남을 조끔 좀 때리거나 남한테 맞는 것은 좋아해도 그저 남 때리는 것은 아주 젤 싫어하는 것이여. 그건 뭐냐 하면 도덕심으로.
그런 즉, 이전은 아마 이전 열국대로 허더래도 또 시방 현재의 현상과 같은 갑디다. 서로 쌈만 하고, 서로 죽이기나 하고, 서로 무기 가지고 다투거나 그카 된대. 그때 양나라 양혜왕이라는 이가 맹자에게 “이 세상은 언제쯤이나 정(定)허겠소” 허고 물으니까 맹자 말씀이 “어느 때고 다 모두 통일해야 정(定) 합니다” 그랬어. “그럼 통일 되기를 누가 통일 허것소” 허니께 “아무 사람이라도 사람 죽이기 좋아 않는 사람이래야지 세상을 통일 합니다” 그랬어요.
그러고 본 즉 시방 조선 청년은 제일 세계 다른 나라 청년에게 대고 보면 사람 죽이기를 다 싫어하는 청년이라. 또 그게 도덕심이야. 헌 즉, 이 다음에 이 세계라는 건 이 불량한 것을 능히 다 통일해 가주구서 안정을 시키게 맨들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조선 청년에게 있으니까. 그게 내가 제일 큰 희망을 가지고 있어.
그러하나 둘째, 비관이라고 하는 거 하나가 있는 것은 무어냐 하면, 근래에 와서 외국에서 들어오는 풍조라던지, 사방에서 들어오는 그 아주 악한 습관이 들어와서, 조선 그 도덕심이, 청년의 도덕심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길에 있단 말이여. 해서 심지어 어떤 청년은 말허기를 “우리도 비행기를 남보다 더 높이 뜨게 허고, 잠항정을 남보담 더 잘하고, 폭발이라던지, 총이라던지, 남의 무력보다 몇 십 갑절 해 가주구서, 이 세상 악한 놈을 모두 불태워 없애겠다”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 있단 말이여. 헌 즉, 그걸 놓고 보게 되면, 이왕에 성경에 말씀한 것 같이 "세상엔 악으로 악을 이기는 법은 없느니라." 그랬어. 사람 많이 죽이고서 사람 죽이는 사람이 어떻게 능히 이길 수가 있느냐 한 즉, 악으로 악을 이기느냐? 아니오. 필경은 세상은 선으루다가 악을 이기는 것인 즉, 이 풍조에 끌려서 시방 조선 청년에두 그런 악한 생각으로 화에 들어가는 일이 많이 있어. 그런 즉, 그게 만일 조끔만 더 크게 부풀려 나가게 되며는 조선두 같이 따라서 멸망 가운데 들어가. 헌 즉, 그게 큰 비관이여.
하지마는 특별히 낙관하는 건 뭐냐 하면, 이왕에 하나님이 이 세계를 한번 온전한 세계로 맨드시자고, 조선을 제일 약한 조선을 택하고, 제일 적은 조선을 택하고, 제일 도덕심이 있는 조선 청년을 택해서, 이와 같은 것으로 벌써 품부해 주셔서, 작정해 논 노릇이니까. 허니까 아무리 사람의 힘으로 정허고 허자고 헌대도 필경 끝에 가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될 줄 알고. 그럴 줄 알고서 그걸루 낙관해. 대체 이 세상은 내일 희망이 없고 그 비관허고 낙관허는 것이 사람이 소리만 지르면, 그것이 명호창창 하다고 그게 될 수가 있는 말이냐고. 하지만, 만고에 내려옴서 동서양 역사를 놓고 보더래도 필경에 악헌 사람이 세상에 성공한 법은 없고, 필경에 가서는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까닭에 처음 희망이 있다가, 중간에 비관이 있다가, 끝에 가서 내 크게 낙관하는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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