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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이런 게 인생

학자와 고난

흔히 교수나 학자를 보고 책상물림이라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한다. 90년대까지 좋은 시절에는 그런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책상이 학자를 만드는 시대는 지나갔다. 팬데믹으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시절도 지나갔다. 알맹이가 있어야 신학자요 목회자다. 학자도 사람이요, 시대가 고난의 시대이기에, 학자/목사도 고난의 열매이다. 루터의 말처럼 "기도와 묵상과 고난이 신학자를 만든다."

요즘 학자는 복사와 스캔하는 단계, 디지털 자료에서 찾아 정리하는 단계, 읽고 쓰고 묵상하는 단계, 논문 심사 후 수정하는 단계, 박사학위 라이선스를 딴 후에도 취직 지원에서 수 십 번 떨어지는 고난의 시작 단계, 시간 강사로 5년, 10년을 견디며 온갖 애환을 맛보아야 하는 단계 ..... 등 갈수록 늘어나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에서 인문대 조교수 초임 평균연령이 48세를 넘었다. 그 나이면 자녀가 고등학생일 것이다. 50에 자리를 잡아도 15년 후엔 은퇴를 해야 한다. 60만 되면 늙어서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팬데믹으로 30-40대들이 아우성이다. 있던 자리도 없어져서 직장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니 50대나 20대는 말해 무엇하랴. 대학이나 신학교라고 다르지 않다. 박사학위 두 개가 있어도 안 된다.

목회자/선교사만 어려운 게 아니다. 직장인만 어려운 게 아니다. 2020년대에 신학자가 되려는 자는 고난의 험난한 길을 헤쳐 가야 한다. 일부 입에 금수저 물고 꽃길을 가서 교수되고 대형교회 목사가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좋은 신학자나 목사가 나오는 법은 없다. 루터의 말처럼 "기도와 묵상과 고난"이 신학자를 만들지, 집안이나 연줄이나 패조직이 좋은 신학자와 목회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투브 조회수가, 좋은 학자나 바른 목사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조명빨, 말빨, 얼굴빨이 좋다고 해서 바른 목회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유투브를 또 하나의 세력과 권력과 욕망의 확장 수단으로 삼는 자는 좋은 학자나 목사가 아니다. 유투브는 전투적으로 자극적이고, 감성을 건드리고, 기복적 메시지를 주면, 엔터테인트먼트하면, 가짜라도 조회수가 올라간다. 과거 부흥사들도 그렇게 해서 지갑을 열었다. 지금은 장난감이나 애완견, 먹빵으로도 유명 설교자보다 수 만 배의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다. 개 한 마리보다 못한 유투브 영향력, social capital을 자랑하지 말라. 한국 대형교회 목사들 주일설교 조회수를 다 합해도 고양이 한 마리에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영향력으로 뭘 내세울 게 있으랴?

그러나 선하게 사용하면 버릴 것이 없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인격을, 인격은 소망을 낳는다. “내 형제들아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신학자에게 속성 과정은 없다. 20년 후에도 기억하는 책을 만들라. 평가는 당대가 아닌 후대가 할 것이다. 50년 후에도 기억하는 학자/목사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