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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코로나 사태와 한국 교회

1918 미주 한인 스페인독감 피해

1918년 10월 24일 <신한민보>를 보면, 스페인 독감을 '스패니쉬 인풀루엔자'나 '서반아 감기'로 지칭했고, 마스크는 '낯가리움'으로 번역해서 사용했다. 지금도 '낯가리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와이오밍 수퍼리오 푸에불로에 거주하던 원창의 씨가 스페인 독감으로 10월 16일에 사망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신한민보 인쇄부 사무직의 최응선 씨도 감염되었으나 완쾌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10월 22일 하루 사이에 1.242명이 감염되었고 44명이 사망했다. (전체 감염자 7,486명, 사망자 206명) 이에 시 당국은 학교를 폐쇄하고 연극장이나 무도장과 같은 공중 장소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고 거리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독감은 활동적인 젊은 층이 많이 걸려 주의를 환기시켰다. 

다만 동거하는 부부의 경우 "여자에게서 남자에게 전염되기가 가장 쉬운 것인데, 특히 25세러 내지 35세의 남자가 더 위험하니"라니, 뭔 말인지......여자 탓이오, 청년 남자가 국가나 주정부에서 보면 중요하단 말인지. ㅎ

사실 <신한민보> 1918년 11월 7일자를 보면, 모두 20대 4명 (젊은 부인, 남자 학생 3인)이 사망했다.  다른 감염자도 많았다. 1919년 1월까지 사망자가 간간이 보도되었다. 아마도 전체 10명 이내가 사망한 듯하다. 따라서 2020년 팬데믹의 경우와 달리, 1918년 12월부터 집회나 예배를 하면서 일상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