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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료, 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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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쉴즈: 세브란스 간호와 한국간호협회의 산모 세브란스 간호를 세운 에스더 쉴즈 한국 간호의 발전을 위해 40년 간 독신으로 봉사하고 1936년에 은퇴   에스더 쉴즈(Esther Lucas Shields)는 1868년 12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농촌 켈리타운쉽에서 해외선교와 인디언선교를 지원하던 경건한 기독교인 부모 아래 태어나 바르게 자랐다. 1891년 필라델피아종합병원 간호원양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3년간 병자를 간호하던 중, 해외선교 권고를 받고, 부르심이 올 때 가기 위해서 준비했다. 그러나 다시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그냥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던 어느 날, 선교에 대한 설교를 들은 그는 동양의 한 나라에 가서 여성과 어린이를 돕기로 결심하고 바로 뉴욕의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지원서를 보냈다. 쉴즈는 제이컵슨 후임으로 ..
적십자병원 전쟁 간호가 삼일운동으로 민족 간호로 전환 러일전쟁으로 발전한 적십자병원의 전쟁간호가 삼일운동으로 민족간호로 전환되다, 1904-1920 1. 러일전쟁과 나이팅게일 적십자 간호의 발전, 1904-1910 1904년 2월 8일 인천해전에서 시작된 러일전쟁은 한국 간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훈련된 일본 간호부의 활동은 한국 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1905년 7월 대한 적십자사병원의 설립을 가져왔으며, 정부 차원의 간호학교를 구상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그러나 일본 의료와 간호의 식민지성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열매를 맺기 전에 한국 정부의 간호 사업은 메말라 죽고 말았다.제물포 적십자병원, 1904제물포적십자병원에서 일본인 간호부의 돌봄을 받는 러시아 군인들, 1904 (일본의 선전 엽서) 러일전쟁 발발 이튿날 일본군은 일본적십자병원 간..
1890 살을 떼어준 셔우드 의사와 여학생 봉업이 2: 19세기말 한국인의 몸 인식 변화와 개신교 의료 선교​전통: 신체관과 효도관이 연결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신체발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훼상치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높임이 효의 마침이다.​여기서 신체발부란 몸과 사지와 머리털과 피부인데, 피부 앞에 머리털이 나올 정도로 머리카락이 중요했다. 그래서 1895년 12월 단발령이 내렸을 때 "내 목은 잘라도 내 상투는 못자른다"며 의병이 일어났다. 영어로 표현하면 "To be, or knot to be. That's a question."이었다.​중국에서 범죄자에게는 오형(五刑)이라 하여 신체를 훼손하는 벌을 준 것도 이런 효도관과 연관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