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첫 독립 만세를 부른 곳은 평양
1919년 3월 1일 첫 독립 만세를 부른 곳은 평양3월 1일 만세 시위지는 일곱 곳뿐이었다. 시간대 별로 보면 평양 1시에 이어 2시에 서울, 선천, 의주, 진남포, 원산, 5시에 안주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참가한 인원은 평양 3,000 여 명, 서울 3-4천명, 선천 1,000 여 명, 의주 1,000여 명, 원산 7,8백명, 진남포 500여 명, 안주 170-180명. 교파별로 보면 북장로회 5(평양, 선천, 의주, 안주, 서울), 북감리회 3 (평양, 진남포, 서울), 남감리회 1(원산) 등이었다. 함흥(캐장)은 1일 거사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2일에 시위가 발생했다. 따라서 평안도 평양-안주-선천-의주 지역 북장로회 교인들이 3,200명(평양 1,000 이상+ 선천 1,000 + 의주 1,00..
1919 의주 3・1운동과 유여대 목사
김승태, "의주에서의 3・1운동과 유여대 목사, " 유여대 목사의 평양 장신 졸업 때 모습, 1915년의주 3·1운동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30분경,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 의주 읍내에 있는 서예수교회당(西耶蘇敎會堂) 부근 공지에 양실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비롯한 주민 700-80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 선언식을 주재한 사람은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유여대(劉如大) 목사였다. 순서는 (1) 찬미가, (2) 기도, (3) 식사(式辭), (4) 선언서 낭독, (5) 독립 창가 합창, (6) 만세, (7) 의주성(義州城) 내외의 행렬 행진으로 이루어졌다.식장에는 운천동 운천교회 장로 허상련(許尙璉)이 미리 준비한 대형 태극기 두 개가 세워지고, 종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