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245) 썸네일형 리스트형 예배의 중요성 #옥묵상 사람은 의례로 산다. 예배하는 존재이다. 종교와 신앙의 핵심은 의례이고 의례에서 상당수 교리가 나온다. 제도 종교에서는 교리가 의례를 규정하고 통제한다. 하지만 의례는 변한다. 상황이 변하고 새 환경에서는 새 의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월절이 수난절이 되고, 동지가 성탄절이 되고, 제사가 추도식이 된다. 의례는 종교문화 상황에 토착화한다. 의례도 변하고 교리도 변한다. 의례의 역사와 교리의 역사는 상호 긴장 관계에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배 의식 없이 머리로만 믿고, 몸과 행위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의식 없이 지적 심리적 종교인으로만 산다면, 그것은 예배당에 가지 않고 가상 공간에서만 예배하는 것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로 모여서 함께 의례와 행동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일차.. 간호원의 기도, 1911 한국 간호부들이 늘어나고, 만주에서 신종 폐렴 페스트로 수 만 명이 사망한 1911년에 번역, 이후 계속 사용된 간호원의 기도 오, 주 나의 하느님이시여 나는 내 신혼을 다 주께 바치나이다. 주를 위하여 이 일을 맡음이여 다만 주의 크신 이름을 받드나이다. 주의 마음 속의 뜨거운 동정을 배울 것임이여 모든 병마의 침해를 받고 고통하는 자에게 수종들리로다. 그런즉 나의 두 눈을 교련하여 주심으로 각 병자를 안위함에 가장 능한 방법을 알게 하시옵소서. 나의 두 손을 지도하여 주심으로 접촉될 때에 사랑에서 나오는 온순함과 영리함을 증명케 하시옵소서. 내 두 발에 힘을 주사 가만가만 걸어다닐 때에 여러 병자의 침상 위에 웃는 얼굴이 많게 하시옵소서. 나의 입술을 만지시며 나의 혀를 인도하여주심으로 각사람에게 대.. 한국 간호사를 위한 첫 나이팅게일 선서, 1911 첫 한국인 졸업간호원 김마르다, 1908 한국 간호계의 겨자씨이며 여성운동의 선구자 김마르다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 제1회 졸업생 ◇전통적 구습의 성벽 부수고 사회로 나오다 김마르다(金瑪多) 부인은 보구여관에서 일하기 전에 서울에 살았는데, 의처증이 있고 질투심이 많은 남편이 집밖으로 나가거나 외간 남자를 만나지 못하도록 오른손 손가락들과 콧등을 절단해서 불구가 되었다. 고대의 다섯 가지 형벌인 묵형(얼굴에 먹칠), 의형(劓刑: 코베기), 월형 (刖刑: 손베기), 궁형(거세), 대벽(사형) 가운데, 코를 베는 의형과 손을 베는 월형을 직접 가한 것이다. 더욱이 남편은 두 아이를 데리고 몰래 사라졌다. 19세기 말 남녀 불평등이나 가정폭력이 그 정도로 심했다. 그녀는 집 안에 숨어 살아야 했고 아이들을 보지 못해 눈물로 지냈다. 장애자라 하녀로.. 첫 한국인 졸업 간호원 이그레이스, 1908년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 1회 졸업생 ◇가부장제 굴레 벗어나 당당하게 일과 결혼 선택 ◇ 손재주 좋고 물품관리 뛰어나 주위에서 감탄 이그레이스(李具禮, 1882∼미상)는 1908년 서울의 감리교 여자병원인 보구여관의 간호원양성학교를 김마르다와 함께 제1회로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의 졸업간호원(현재의 등록간호사)이 되었다. 그레이스는 1882년 9월 9일 서울에서 여종으로 태어났고, 이름은 `복업'이었다. 어릴 때 괴사(壞死)병에 걸려 다리 불구가 되었는데, 보구여관에 와서 여러 해 동안 홀(Rosetta S. Hall) 의사의 괴상당한 뼈 제거 수술에 이어 커틀러(Mary M. Cutler) 의사의 치료를 받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여 제대로 걷게 되었다. 병원 조수로 간호 일과 환자 대상 전도를 하던 황메.. 한국 간호교육의 선구자 에드먼즈 근대 한국 간호 역사 여행 ❺ 1903년 첫 간호학교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 1906년 첫 간호원 예모식 1908년 첫 한국인 졸업간호원 이그레이스와 김마르다 배출 마가레트 제인 에드먼즈(Margaret Jane Edmunds, 1871~1945)는 미국 북감리회 여자해외선교회의 간호 선교사로 1903년 3월 서울에 파송되어 그해 12월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간호원장으로서 첫 한국인 간호원(이그레이스, 김마르다, 정매티, 김엘렌)을 배출했다. 에드먼즈는 1871년 캐나다 온타리오 스미스폴즈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면서 크리미아 전쟁 때 흑해의 야전 병원에서 활동한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를 읽고 간호원이 될 꿈을 품었다. 1892년 12월 미시건대학교 간호원양성학교.. [마삼락 박사 설교, 2006. 5. 10] 장신대에서 부친의 유해 이장한 후 한 설교 Dr. Samuel Hugh Moffett's sermon in English "Three Rocks in the Christian Missions' (2016) 부친을 통해 본 한국교회사 요약 subtitle이 있으니 cc를 클릭한 후 들으면서 읽으면 됩니다. 내 Youtube에 8개월만에 처음 포스팅합니다. 9개월 전에 오픈하고 내 강의들과 한국 기독교인 관련 역사물 영화를 올렸는데, 400여 명이 구독하고 중단되었다. 구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B87JdcEVng&t=47s 1918 무오 독감으로 한국에서만 14만 명 사망 무오 독감(1918)으로 14만 명 사망 부산에 상륙한 독감은 10월부터 맹위를 떨쳐 이듬해 초까지 유행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1,678만3,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2,113명(44%)이 감염되어 13만9,128명(전체 감염자의 1.87%, 전체인구의 0.83%)이 희생되었다. (, 1920년 3월호) 충청남도에서 특히 기승을 부려 11월 말에 서산시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인 8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예산군과 홍성군에서 수천명이 사망했다. 1918년 10월말 종로 관내에서만 2만 6천 명이 감염되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경성부 독감 유행은 심하지 않았고, 268명 사망자 중 조선인은 119명이었다. 11월 9일자를 보면 평안도 각군에 환자가 넘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3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