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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36년간 장대현교회 강단 위 천장에 태극기 숨기고 설교 [자료 발굴] 김성여, "길선주 목사," 제9권 10호(1954년 10월): 162~166. 1945년 8월 19일 해방 후 첫 주일 평양 장대현교회 강단에 오른 김화식 목사의 손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김화식 목사는 말했다. "이 태극기는 일한 합방하던 경술[1910년] 8월 29일에 우리 장대재 예배당 강당 위 천장 밑에 숨겨두어던 것입니다." 감격의 눈물, 환호하는 함성, 흥분의 박수는 예배당이 떠나가는 듯하였다.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 장대재교회는 평양에서도 최고 최대의 교회요, 과거 반세기 동안 전국 교회를 영도하던 본산이었다. 일제 36년 그 무서운 침략 정책 밑에서도 그 꼭대기에 태극기를 비장하고 있었다. 그 태극기를 숨긴 이는 길선주였다. 국망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며 태극기를..
김재준의 송창근 박사 회고, 1954 김재준, "새해에 생각나는 사람들: 송창근 박사," (1954년 3월): 182-185. "내가 죽거든 불에 태워서 그 유골을 네가 가지고 본국에 가서 한국신학대학 현관 밑에 파묻어 드나드는 학생들이 밟고 지나게 하라."-- 송찬근 목사의 유언, 1949년 웨스턴신학교 졸업식 연설 중 뇌일혈로 쓰러진 후.
1901-04년 전주 선교지부 건물 사진 잉골드 테이트 파일에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있고 그곳에 설명이 있어서 다음 사진의 건물을 다음과 같이 확정합니다. CHUNJU STATION, 1901 1 Mr. Tate and Miss Martha Tate's House 2 Dr. Ingold's House 3 Hospital 4 Dispensary 5 Gate House 1 최의덕 목사와 여동생 최마태의 사택 2 잉골드 의사 사택 3 예수병원 4 진료소 5 문지기의 집 잉골드 의사의 집을 짓기 전이라 초가에 살고 있다. 언덕 위에 레이놀즈 목사, 해리슨 목사 등의 사택이 있다. 다음은 The Missionary (August 1904): inner cover 사진이다. 산 위에서 바라본 광경으로, 중앙에 테이트 목사 사택과 오른쪽 병원과 진료소..
그런 상황에 "만일" 당신이 그럴 수 있다면 .... (언더우드) 1921년 언더우드 부인이 쓴 남편의 전기 Underwood of Korea 마지막에 나오는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 "IF" 부인은 이 내용이 말년의 언더우드 목사를 가장 잘 묘사하기에 인용했다고 밝혔다. 나는 이 시를 영문과 4학년 때인 1986년에 수정하여 완성했다. 지금 보면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어서 새로 번역하고 싶지만 이미 아래 책 마지막 부분에 인쇄되어 있으니 그대로 인용한다. 그가 여정을 마치고 본향으로 간 지 110년이 가까이 온다. 그를 바라보면서 40년 간 연구하며 살았으나, 그에 따라가지 못하니 못내 부끄럽다.
김구의 아내 최준례의 무덤, 1924년 김구 선생이 어머니 곽낙원 여사와 오른쪽이 맏아들 김인, 둘째 아들 김신(왼쪽)과 함께 아내 최준례 여사 무덤을 찾았다. 한글학자 김두봉이 한글로 묘비명을 썼다.(백범기념관 제공). [출처 1]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 대한민국 ㅂ해 ㄱ달 ㄱ날 죽음 최준례 묻엄 남편 김구 세움 내용을 풀이하려면 자음 순서를 아라비아 숫자로 환원해서 이해하면 된다. 즉, 'ㄹ'은 아라비아 숫자로 하면 ㄱ-ㄴ-ㄷ에 이어 네 번째이니 '4'를 말한다. 최 여사의 출생일은 단기 4222년(서기 1889년) 3월 19일이며, 사망일은 '대한민국 6년', 즉 1924년 1월 1일이다. 김구는 대한민국이 1919년 건국되었으므로 그런 연호를 사용했다. 다음은 블로그 “보림재”에서 퍼온 글이다. (출처 2) 하루는 신천 사평동(謝平..
김익두 설교집, <信仰의 路>, 1924 (경성, 박문서관, 대정 13년 1924년 6월 25일), 88쪽. (16편의 설교) 편집 발행인 노익형, 교정 김익두 목사, 인쇄 심우택 (대동인쇄주식회사), 발행소 박문서관, 판매 신구서림. 언더우드의 (1920)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개인 설교집이다. 김익두 목사가 남대문외교회에 부임하여 한 설교 가운데 16편을 노익형이 정리했다. 다음은 첫 설교문인 "항상 즐거워하라" 본문 첫 페이지이다. 아래 설교문 전문을 싣는다. 김익두 목사는 유식한 일본어체인 '...적'(과학적, 근대적 등)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일상어로 대화체로 설교하여 회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부흥사로서 청중 중심의 이야기체 설교를 하고 때로는 상스러운 말도 하는 목사로 유명했는데, 이 설교에서도 대화체나 '외입..
밀러(민로아) 부부, 1899년 다음은 흔히 목포의 유진 벨과 로티 벨 가족 사진(1901년, 헨리와 샬로트)으로 알려져 있고, 유진벨 기념관 웹사이트에도 올라가 있으나, 초기 단체 사진에 나오는 선교사들을 확인해 보면, 이들은 서울에서 활동하던 밀러(Frederick Scheiblin Miller 閔老雅, 1866-1937) 가족 사진이다. 부인 안나(Anna Reinecke Miller, 1865-1903)가 1903년 6월 17일 복막염으로 별세했으므로, 그 전에 촬영했다. 촬영시기와 장소를 짐작해 보면 1899년 피츠버그이다. 사진의 아이들은 장녀 리세트(2세)와 장남 윌리엄 뉴톤(4세)이다. 부인은 아래 1891년 사진의 옷과 동일한 것을 입고 있다. 1898년 10월 아들을 잃고나서 1899년 4월 부인의 고향인 피츠버그로 ..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 설립일은 1906년 10월 1일 (2008)에 이어 올해 연세대 박물관의 에비슨 전시회에서 1906년 9월 29일을 설립일로 서술하고 있으나, 10월 1일이다. 양성학교(양성소)를 기획, 조직한 것은 9월 29일, 학생을 받아 개교한 것는 10월 1일이다. 사소한 문제이지만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