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의주 3・1운동과 유여대 목사
김승태, "의주에서의 3・1운동과 유여대 목사, " 유여대 목사의 평양 장신 졸업 때 모습, 1915년의주 3·1운동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30분경,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 의주 읍내에 있는 서예수교회당(西耶蘇敎會堂) 부근 공지에 양실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비롯한 주민 700-80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 선언식을 주재한 사람은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유여대(劉如大) 목사였다. 순서는 (1) 찬미가, (2) 기도, (3) 식사(式辭), (4) 선언서 낭독, (5) 독립 창가 합창, (6) 만세, (7) 의주성(義州城) 내외의 행렬 행진으로 이루어졌다.식장에는 운천동 운천교회 장로 허상련(許尙璉)이 미리 준비한 대형 태극기 두 개가 세워지고, 종이로..
1919 제암리 학살사건
성경을 읽은 결과: "어떤 학살 사건" (사이토 이사무, 1919년) 아아 조국이 망했는데, 당국이 무단과 폭력을 사용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불복종하며 자유를 요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향해 기독교인들이 모여 '소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으랴. 아, 1919년 4월 15일 수원 제암리교회, 그 날은 수난 주간 화요일이었다. 齋藤勇, "어느 살육 사건," 小川圭治 지명관 편 (김윤옥 손규태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0), 727-729. 원문은 1919. 5. 22일자에 있음. 삼일운동을 본 프레드릭 맥켄지 신문 기자는 말했다.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한국인들이 기독교를 수용했다. 미국에서 온 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개인적으로 청결하게 되고, ‘안방’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