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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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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일제 싱가포르 공격 기념 대강연 영하(박)인덕, 천성(김)활란, 고령(신)흥우, 무슨 호나 되는 줄 알겠다. 왜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전쟁 지원 강연을 할까? 3년 반 후에 어떤 일이 올지 알 수 없는 인생이다. 대동아의 꿈은 산사조각 났으나, 이들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토왜란 "악질 한국인 친일파 관리" 土倭란 악질 한국인 친일파 관리1908-48년 용례에서 보듯이 토왜의 토는 토착인 곧 한국인을 뜻하고, 왜는 친일파의 뜻이었다. 악질적인 골수 친일파 관리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해방 이후에도 제한적으로만 사용했다. 많은 용례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만 세 가지로 그 뜻을 살펴보자1. 1908년 황현의 1908년 의병들이 고종의 복위와 통감부 철수, 일본인 관리 폐지, 외교권 복권을 주장할 때, 일본어를 하는 한국인 통역관이 무고, 살인, 약탈 등을 일본인(外寇)보다 더 심하게 하므로, 그들을 土倭(토착인 왜구 = 한국인 친일파)라고 했다. 곧 외국인인 왜구보다 토착인 왜구가 더 악질이라는 뜻이다.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6권 > 隆熙 2년 戊申(1908년) ② > 21. 義兵의 投書義兵投書統監府, 要以四..
1948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민주적 합법적 정부 국사 교과서 왜곡 논란, 무엇이 사실인가[옥성득의 역사시론] 1948/50년 유엔총회 결의로 본 대한민국 정부http://www.acropolistimes.com/news/articlePrint.html?idxno=19162013년 11월 06일 (수) 16:31:40 아크로폴리스 UCLA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옥성득 동문(영문 79/국사 84)이 다음 글을 아크로에 기고해오셨습니다. * * * * *한반도의 유일한 민주적 합법 정부최근 명지대 강규형 교수의 글 "歪曲 국사 교과서 修正 거부해선 안 돼"가 10월 23일자에 나오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서울대 박태균 교수의 시론 "유엔의 48년 ‘유일 합법정부’ 승인: 38도선 이남인가, 한반도 전체인가"가 10월 30일자에 실렸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한..
1947년 북한 괴뢰정권이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1947년에는 소련군이 북한에 김일성 괴뢰 정부를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다음은 2018년 통일부가 발간한 이다.매년 발간하는 책으로 누구나 다운로드 받아 읽을 수 있다. https://www.unikorea.go.kr/books/understand/understand/20-24쪽에 북한 정권 수립 역사를 서술해 놓고 있다. 북한은 1945년부터 소련의 지도 하에 북한 단독 정권 수립을 준비했다. 남한이 먼저 단독 정부를 구성한 게 아니다. 북한 괴뢰 정권이 먼저 세워졌다. 1947년에는 헌법까지 만들었다. 1948년 2월에는 김일성이 인민군을 창설하고 3월 조선공산당 대회로 실권을 잡아 정권 수립을 실제적으로 완성했다. 소련은 친탁 통치 기간에 이런 과정을 진행하면서, 한반도에 하나의 정부를 세우자는 U..
1940년 3월 20일 신사참배 가결 후 노회 모습 1940 신사참배 가결 후 노회 모습1938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국가 의례로 규정하고 참배 결의에 이어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총회 결의에 따라 1939년부터 총회, 노회, 교회는 회의나 국경일 등에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다음은 1940년 3월 연화동교회에서 열린 평양 노회 38회 개회 모습이다. 개회 선언 후 교회 마당에서 을 거행한 후 회의에 들어갔다. 애국식은 국기 게양, 국가 합창, 궁성 요배, 묵도 1분간, 국민서사 제창. 만세 삼창으로 진행되었다. "대일본 제국 만세"를 삼창했을 것이다. 이어서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훼절한 교회의 모습이다. 신사참배를 수용한 마당에 다른 애국 행위는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일제에 굴복한 교회는 향후 5년간 무슨 일이 그..
詩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詩(문학과 음악)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1.유교 五經의 시작은 공자가 편찬한 옛 시들로 이루어 진 詩經이다. 공자는 311편(305편)의 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노송 경편’에 등장하는 ‘사무사’ 구절을 인용하여 “思無邪”라고 했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역시 공자는 술이불찬(述而不贊)의 자세,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로 낙빈 속에 겸손하면서도 당당히 인간성의 가치를 믿고 사신 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와 음악의 대가였다.​자공이 말하길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께서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되 [도를] 즐거워하며, 부유하되 예절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자공이 “詩經에서 ‘곧 잘라 놓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