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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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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어떻게 예배를 드릴 것인가?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한국교회가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현재 한국 교회 예배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성찰해 보자. 횡령, 성범죄, 세습 등으로 타락한 한국 개신교가 회개하지 않으면 유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I. 예배냐 신앙이냐 한국교회는 1938-45년에 예배를 목숨처럼 지키지 않았다. 1938년 장로회 총회 신사참배 결의 후, 참배하는 교회에 일어난 일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해보자. 상당 부분은 생략했다. (1) 1941년 1월 평북교회들 안식일 폐지 결의: "50년 서양 사상 지배를 철폐하고" 전시 체제에 맞추어, 일요일이라 부르고 주일성수 포기하고, 생업에 종사하였다. 다른 지역도 따랐다. (2) 1942년 1-3월 평남 교회 560개 중 552개 교회 종 헌납: 싱가포르 ..
옥성득 편,『朝鮮예수敎長老會 五十週年 歷史畵譜; 禧年·祝賀·記念』(1935; 민속원, 2020) 『朝鮮예수敎長老會 五十週年 歷史畵譜; 禧年·祝賀·記念』 A Pictorial History Illustrating the First FiftyYears of Work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Commemorating the Jubilee Year 1934 (First ed. 1935; Reprint first ed., Seoul: Minsokwon, September 2020), Introduced and edited by Sung Deuk Oak. 205 pp + 13 pp. 2020년 9월 20일에 발간됩니다.
1909 최병헌, <성산명경>, 서문 한국 개신교 최초의 비교종교론이라고 할 수 있는 최병헌(崔炳憲, 1858~1927)의 신소설 은 1909년 초판과 1911년 수정판이 있다. 국내에는 1911년판만 알려져 있었으나, 오래 전에 필자가 하바드대학교 옌칭도서관에서 1909년 초판을 발견하여, 수정판에는 없는 그 서문을 소개한 바 있다. 현재 국내에는 초판본이 발견되었고, 초판본 표지 그림과 수정판 표지 그림이 약간 다른 것(낚시꾼의 낚시대가 90도로 직각인 것이 초판, 줄이 높이 들어져 있는 것이 수정판)까지 밝혀졌다. 1 얼마 전 필자가 그 표지 그림을 그린 화백이 조선 왕실 최후의 궁중화가인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인 것도 밝혔다. 안중식(安中植, 1861년 8월 28일 - 1919년 9월 10일)은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화가로..
book review, 첫 사건으로 본 초대한국교회사 안교성, "한국개산교 역사의 시작을 탐구하다" (2017. 2): 192-193.
삶은 공평하다 박사 논문을 쓸 때 돈을 아끼려고 목사들이 교회를 놓고 싸우는 도시를 떠나 조용한 시골 해변가 근처에서 몇 년을 살았다. 여름이면 다른 곳에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 셋 데리고 조금 가면 모래사장이라 놀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가까운 두 동네 도서관들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자라서 시인이 되고 아티스트가 되고 작가가 되었다. 그곳에 살 때 식구 다섯 명이 옷이나 신발을 사지 않았다. 동네 쓰레기장 옆에 무료 창고(나눔의 집)가 있어서 입다가 적어진 옷이나 신발을 서로 나누었기에 깨끗한 옷이나 일용품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라 어려운 친구도 돕고 기부도 잘 한다. 그리운 나의 조용하고 가난했던 시간들. 그때 읽은 자료로 지금도 공부하고 그 마신 공기로 지금도 호흡하고 그 파도 소리..
과욕 Maslow의 다섯 가지 욕구 중 서민은 아래 세 욕구만 충족되면 행복하다. 사회적, 정치적, 영적 지도자가 되는 자아 실현에는 먼저 네 번째 욕구인 존경, 명예, 인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네 번재 항목에서 실패하면 다섯 번째도 순식간에 무너진다. 기본 세 가지 욕구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면 네 번째 명예와 존경의 자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서울 아파트는 두 번째, 성은 첫 번째 욕구. 4번과 5번을 어느 정도 가진 자들이 1번, 2번에서 과욕을 부리면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7년을 며칠 같이 [추억의 숙대 서문] 1985년부터 1991년까지 고학생이던 시절 7년을 하루같이 숙대 서문을 주말을 빼고 매일 드나들며 이만열 교수님 연구실 개인 조교로 오후부터 저녁 9시까지 공부했다. 짜장면으로 저녁을 채우고, 의료 선교사들, 초기 선교사들, 로스, 루미스의 손글씨 편지 자료부터 읽어 나가며 정리했다. 숙대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방은 그 연구실이 유일했다. 교수님과 내가 정문으로 퇴근하면 수위들이 불을 끄고 쉬었다. "엉덩이로 공부한" 결과물이 와 1, 2권이었다. 추후 미국에 와서 과 을 냈다. 7년 간 책 다섯 권을 쓴 셈이다. 매일 오후에 나는 신림동을 출발해 버스로 남영역에 내려 숙대까지 오르막 길을 뭇 여대생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을 돌 보듯 하며 힘차게 걸었다. ㅎ 다시 걷고 싶은 ..
학자와 고난 흔히 교수나 학자를 보고 책상물림이라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한다. 90년대까지 좋은 시절에는 그런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책상이 학자를 만드는 시대는 지나갔다. 팬데믹으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시절도 지나갔다. 알맹이가 있어야 신학자요 목회자다. 학자도 사람이요, 시대가 고난의 시대이기에, 학자/목사도 고난의 열매이다. 루터의 말처럼 "기도와 묵상과 고난이 신학자를 만든다." 요즘 학자는 복사와 스캔하는 단계, 디지털 자료에서 찾아 정리하는 단계, 읽고 쓰고 묵상하는 단계, 논문 심사 후 수정하는 단계, 박사학위 라이선스를 딴 후에도 취직 지원에서 수 십 번 떨어지는 고난의 시작 단계, 시간 강사로 5년, 10년을 견디며 온갖 애환을 맛보아야 하는 단계 ..... 등 갈수록 늘어나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