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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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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4년 전주 선교지부 건물 사진 잉골드 테이트 파일에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있고 그곳에 설명이 있어서 다음 사진의 건물을 다음과 같이 확정합니다. CHUNJU STATION, 1901 1 Mr. Tate and Miss Martha Tate's House 2 Dr. Ingold's House 3 Hospital 4 Dispensary 5 Gate House 1 최의덕 목사와 여동생 최마태의 사택 2 잉골드 의사 사택 3 예수병원 4 진료소 5 문지기의 집 잉골드 의사의 집을 짓기 전이라 초가에 살고 있다. 언덕 위에 레이놀즈 목사, 해리슨 목사 등의 사택이 있다. 다음은 The Missionary (August 1904): inner cover 사진이다. 산 위에서 바라본 광경으로, 중앙에 테이트 목사 사택과 오른쪽 병원과 진료소..
김익두 설교집, <信仰의 路>, 1924 (경성, 박문서관, 대정 13년 1924년 6월 25일), 88쪽. (16편의 설교) 편집 발행인 노익형, 교정 김익두 목사, 인쇄 심우택 (대동인쇄주식회사), 발행소 박문서관, 판매 신구서림. 언더우드의 (1920)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개인 설교집이다. 김익두 목사가 남대문외교회에 부임하여 한 설교 가운데 16편을 노익형이 정리했다. 다음은 첫 설교문인 "항상 즐거워하라" 본문 첫 페이지이다. 아래 설교문 전문을 싣는다. 김익두 목사는 유식한 일본어체인 '...적'(과학적, 근대적 등)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일상어로 대화체로 설교하여 회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부흥사로서 청중 중심의 이야기체 설교를 하고 때로는 상스러운 말도 하는 목사로 유명했는데, 이 설교에서도 대화체나 '외입..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 설립일은 1906년 10월 1일 (2008)에 이어 올해 연세대 박물관의 에비슨 전시회에서 1906년 9월 29일을 설립일로 서술하고 있으나, 10월 1일이다. 양성학교(양성소)를 기획, 조직한 것은 9월 29일, 학생을 받아 개교한 것는 10월 1일이다. 사소한 문제이지만 바로잡아야 한다.
홀 의사의 Christmas Seal과 엽서, 1932-40 한국의 어린이와 어머니를 위해 아기 예수 오셨네! 1. 크리스마스 씨일, 1932-1940년 해주구세(결핵)요양원 원장 홀(Sherwood Hall)이 1932부터 일제에 의해 추방당한 1940년까지 해주구세요양원 결핵 환자 치료를 위해 모금하기 위해 고안하고 발행한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이다. 영국에서 1904년에 시작된 성탄절 씰 운동은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에서 홀 의사는 한국인의 문화와 고유미, 전통 풍습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국화로 실을 만들어 일제 말 암울한 시기에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의료 선교에 도움을 주었다. 2. 크리스마스 엽서, 1933-1937년 80년전 조선결핵박멸운동회. 해주결핵요양원 홀 의사가 만든 크리스마스 실 엽서 4종, 1933..
한국의 첫 공식 간호원 히스코트, 웹스터, 로이스 내한, 1891-92년 개화기 최고의 간호 수준을 자랑한 서울의 영국성공회 병원 1895년부터 내외 풍습을 깨고 남자환자 간호를 시작한 웹스터와 로이스, 6~7년간 봉사 후 죽어 양화진에 묻히다 서울 성마태병원 수술실의 로이스와 웹스터 간호원, 1898년 한국 초기 간호 역사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두 가지는, 첫 공식 간호원들은 영국 성공회가 파송한 세 간호원이었으며, 1906년까지 서울에서 최고 수준의 간호는 영국 성공회의 서울 낙동(현재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 앞) 성마태병원(남자병원)과 정동의 성베드로병원(여자병원)에서 시행되었다는 사실이다. 1890년에 시작된 영국성공회 한국선교회는 거의 평생 서원한 독신자로 이루어졌는데, 대다수 여자 선교사는 초대 주교 코르프의 요청으로 성베드로수녀회가 파송했다. 성베드로수녀회는 첫..
근대 선교의 모델: 삼각형인가 오각형인가? 흔히 근대 선교는 전도(교회) - 의료(병원) - 교육 (학교)의 삼각형을 모델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자료를 일부만 읽었을 때 내리는 결론이다. 사실은 전도(교회)를 위해서 의료(병원) + 교육(학교) + 문서(활판소) + 여성 사업이 함께 가는 오각형이었다. 한국 개신교는 의료, 교육, 언론과 서적, 여성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신사상과 신기술을 소개하면서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다. 오늘 선교도 여전히 medical mission, educational mission, literary mission, woman mission 등을 통해 소외되고 차별받는 자들을 도울 때 교회가 설 것이다. 문서 선교에는 전도 소책자와 서적은 물론 신문 잡지와 같은 언론 활동을 포함하며, 여성 사업(Woman'..
한센씨병(나병) 선교의 현재적 의미 [leprosy mission 나병선교] 일제 시대 개신교는 부산, 대구, 광주-순천에서 나환자들을 수용하여 치료하고 간호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는 약 2만 명의 한센씨병환자들이 존재했다. 일제의 소록도 수용소가 1916년에 정식 개원하기 전부터 개신교 의료 선교는 몸 + 영혼의 전인 구원의 모델로 나병 선교를 전개했다. 1916년은 또 chaulmoogra oil(대풍자유)이 나병 약으로 개발되어 치료에 큰 효과를 보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 한국학계에는 소록도 수용소를 미셜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관점에서 연구한 책과 논문들이 많다. 현대 사회가 온라인 정보를 통해 '감시와 통제'하는 사회가 되었기에 푸코의 개념은 쉽게 다가온다. 그러나 1910-60년대 한국개신교의 나병 선교는 오늘날 신학의 한 ..
1896 한국 기독교 통계 Daniel L. Gifford, Everyday Life in Korea (New York: Revell, 18908), Appendix A. 개신교 선교사 101명, 천주교 선교사 34명 청일전쟁 후 1년 동안 개신교에는 217명이 새로 입교했고, 천주교에는 1,250명이 입교했다. 이 추세는 점점 그 간격이 좁혀지다가, 1902년 전후에 역전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위 표에서 보듯이 의료에 개신교가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병원은 9개, 진료소 12개에서 455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고, 3만 여 명이 외래환자로 치료를 받았다. 교육 선교에서는, 1905년 이후 애국계몽운동 기간에 개신교 학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