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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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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경례 [1948년 7월 대한민국의 이념과 국기경례]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태극기 게양을 강조하고 국기하강식도 실시했다. 태극기와 애국심은 귀하지만, 선용되기보다 국가주의에 의해 악용된 경우가 많아 다수의 사람들이 우려했다. 1948년 이승만 정권은 다른 신생국들처럼 국가 생존과 건설을 위해 파시즘 권위주의를 채택했다. 일견 기독교 정권이니 자유민주주의니 하지만, 주된 국가 이념은 안호상(문교부장관)과 이범석(국무총리) 노선에서 채택한 일당 독재(영구 정권) 권위주의였다. 미국은 냉전체제에서 소련과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안-이의 청년 조직을 적극 후원했다. 기독교계에 적산 재산을 준 것은 일종의 당근을 준 것이며, '기독교 국가' 운운은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파시즘의 한 기제가 국..
남원의 믿음의 혜성, 김학정 여사 남원의 믿음의 혜성 김학정 (1884. 10. 17-1936. 3. 5) 기독교 열녀(완벽한 여성)상으로 칭송 받은 김학정. 종가집 며느리로서 결혼 직후 남편이 죽었으나, 신앙인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고 이웃에 전도하여 교회도 일으켰다. 윤리적 열녀요 종교적 자선가였다.
2010-21 예장 통합 합동 교인 통계 2021년 총회에 보고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의 공식 교인 통계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2010년 300만에서 2019년 250만까지 감소하는데 10년이 걸렸다. 2019년 250만에서 2021년 200만으로 감소하는데엔 2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코로나 팬데빅에 대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좋은 기회를 놓쳤다. 회개와 봉사의 의무는 하지 않고, 예배의 자유와 권리만을 외쳤기 때문이다. 10년만에 70만씩을 상실했다면 특단의 대책을 내어놓아야 한다. 총회로 모여서 부회장 선거에 두 시간을 보내는 총회는 희망이 없다.
1921년 경성고아원의 모습 서대문밖 모화관 부근 1919년 10월 서대문 부근 김병찬의 자택에서 20여 명의 소년 고아들을 돌보는 고아원이 설립되었다. 오긍선과 윤치호를 중심으로 경성고아구제회가 발기되고(1920.1)→경성고아구제회 조직(1920.2)→경성고아원 개원식(1921.5)→재단법인 경성보육원 인가(1922.5)→안양분원 설치(1936.9)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사회사업 기관으로 성장했다. (참고 한규무, "경성보육원의 설립과 운영 (1919-1945)," 79호 (2011년 10월), 209-242.) 경성고아원 혹은 경성보육원(Seoul Boys' House)으로 불렸다. 1920년 미국 적십자사 조선지부가 고아들에게 옷을 제공하고 사진을 찍었다. Korea Mission Field (April 192..
애국가는 애국가 애국가는 애국가 2015. 8. 15 옥성득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애국가 가사는 1897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1907년 이전에 완성되었다. 작사자로는 윤치호, 안창호, 최병헌 설 등이 있으나 확실한 작사자는 없다. 분명한 것은 개화기 애국지사들이 함께 만들었고 국운이 기울 때 대한제국을 살리자, 근대독립 국가를 건설하자며 애국지사와 학생과 교회와 민중이 함께 불렀던 대한의 노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뭇 대한국인들이 국내외에서 피땀 흘리며 불렀던 애국가였다. 샌프란시스코의 국민회도, 상하이의 임시정부도 이 노래를 불렀다. 그 가사가 온전한 형태로 처음 출판된 것은 윤치호 편역의 '찬미가'(1907)였다. 올드랭싸인 곡에 맞추어 불렀..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수정자는 안창호 이영수, "애국가와 곡조에 관하여," (샌프란시스코, 1958년 4월 9일) http://search.i815.or.kr/OrgData/OrgList.jsp?tid=ns&id=GM1958040901-07 금년도 국민회 창립 기념식에서 본회 역사담을 중가주(중부캘리포니아) 지방회에서 해온 바 할 수 있는 데까지 간단을 주장하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장을 하여 놓고 보니 마땅히 할 말들을 못하였음이 적지 않게 유감이 됩니다. 더욱이 청산에 앞길이 날로날로 가까워 오는 우리 소수로 넌덜이 세상을 떠나게 된 후에는 후세 한족들이 앞길이 없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우리 애국가와 곡조에 관한 내력만을 간단히 말하고자 합니다. 재미 이영수 작자 광무황제 당시에 윤치호 씨가 현행 애국가를 제작하실 때 스코틀랜드국의 국..
7월의 한국교회사 7월의 사건과 생몰자
성경전서 한글 개역판은 왜 1956년이 아닌 1961판에 판권이 있나요? 1956년 판을 대폭 수정한 것이 1961년이므로, 대한성서공회의 의 최종 판권 연도는 1961년입니다. 아래 옥성득, (2020)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