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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석(박)사 논문의 역사 [30년 전 석사논문] "초기 성경번역에 나타난 주요 논쟁 연구 1877-1939" (장신대 대학원, 1993년 2월) 내가 쓴 1993년 신학석사 졸업논문 안에는 신문 기사 세 개가 들어 있다. 1991년 말 온누리교회 전임전도사를 사임하고, 1992년 1년간 시골 거창에서 쓴 논문으로 1993년 전국신학대학협의회가 주는 논문상을 받았고 (3명 수상자 기독교윤리학의 김정준, 실천신학의 장성배, 역사신학 옥성득, 모두 나중에 교수가 되었다.) 내 논문이 신문 세 곳에 소개되었다.에는 세 논문 모두, 와 에는 내 논문만 소개되었다. 기독공보와 한겨레가 관심을 가진 것은 당시 출판된 의 신명과 문체 등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신문 모두 한국교회 보수화를 비판하는 내 논문을 잘 소개해 주었다..
한양에 들어오는 동방박사 세 사람, 1974 혜촌 김학수 화백의 성탄절 그림, 1974 에 실려 흑백인 점이 아쉽지만 ... 잘 알려진 후기의 다른 그림들보다 단순 소박해서 좋다. 제목이 없는데, "한양에 들어오는 동방박사 세 사람"으로 붙여본다. 눈길에 경배하러 가는 모습이다. 아기 예수를 만난 후, 갈 때에는 로 가는 게 인생이다.
성탄절 전도용 발췌 성서, 1954년 성탄절 전도용 발췌성서 표지, 대한성서공회 발행, 1954년 전후에 읽을 거리도 제대로 없을 때 성경은 많은 학생들에게 독서를 위한 거의 유일한 책이었다.
한국인의 첫 성탄절 예배, 1887년 1887년 9월 27일 목요일 저녁 정동장로교회(새문안교회)가 조직되고, 10월 9일 일요일 벧엘감리교회(정동제일교회) 첫 예배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1887년 12월 25일에 두 교회는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한국 개신교회의 첫 성탄절 모습을 아펜젤러 일기를 통해서 보자. 내가 학부 3학년 때인 1984년, 중앙일보 사옥 마이크로필름실에서 출력한 후 아르바이트하던 원효로 한통개발회사 기사실에서 번역했다. 아펜젤러 내한 100주년 때인 1985년에 연세대출판부에서 발간한 , 314-316에 나온다. 당시 내가 공부한 흔적도 남아 있다. 최초의 산타클로스는 아펜젤러! 그는 양말 네 개를 걸어놓고 딸 엘리스, 피터 쿠퍼, 이서식, 최갑길 네 아이에게 동등하게 선물을 주었다. 아펜젤러 부부는 성탄 선물을 교환..
2018년 한국 개신교 분석 1. 감리교회 교세 100만 명으로 추락 얼마 전 (2018년 5월) 감리교회 교세가 발표되어 약간의 충격을 주었다. 다음은 대한기독교감리회 웹페이지에 공식 발표된 자료이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68 한 때 150만까지 갔으나 이제 100만 명이다. 올해(2018년) 말 예상치는 내가 추가했다. 곧 20년 전인 1998년으로 돌아간 130만 명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출석하는 교인 숫자는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난 20년 간 감리교회가 보여준 내부 분열과 부패상을 생각하면, 2000년대 10년 간 증가한 것이 이상할 정도이며, 2011년부터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정상적인 통계가 나왔다고 볼 수밖에..
덕혜입문 올해(2022년) 번역본이 김현우, 서신혜, 이고은 공역으로 새로 출간되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내가 2006년 영문 논문으로 소개했고, 그것을 (2020), 575-579쪽에 수정하여 실었다. 초기 한국개신교(와 중국 개신교)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전도문서)의 하나가 그리스피 존(Griffith John 楊格非, 1831-1912)의 (한문 초판 1879년)이다. Gate of Virtue and Knowledge라는 책명에서 보듯이 기독교 교리와 자연과학을 통해 예수교에 입문하도록 했다. 존의 글을 문서 조사인 션즈싱(沈子星, 1825-1887)이 유려하고 쉬운 문리체(淺문리)로 바꾸어서 출판했기 때문에 문장의 풍(風), 혹은 풍미를 중시한 중국 지식인..
[신조어] 하나님, 1905~07년 1905-07년 일반인들이 사용한 '하나님’ 1. 1905년 11월 19일자 : 을사조약 후 국가가 침륜 멸망하는 지경일 때 10만 예수교인은 매일 위국기도회를 열고 위국기도문으로 하나님께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했다. 2. 1906년 4월 20일자 의 사설, "예수교회에 대하여 충고함" 예수교인 청년들이 힘을 믿고 악행하고 돈을 착취하는 교폐에 대한 비판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을 존봉하고 십계를 지키어 충애를 주장하는" 예수교회가 그런 누명에서 벗어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때부터 예수를 팔아 조직(회)를 만들고 돈을 뽑아내는 ㅈ광훈 같은 자들이 있었다. 작폐하는 불한당들이었다. 기사의 청년회 집단은 안되자 일진회에 가입했다. 교'회'에서 일진'회'로 갔다. 3. 1907년 皇城新聞 연재소설 의 ..
배털즈비, "저녁 기도" Evening Prayer by C. Maud Battersby 한글 번역 『監理會報』, 1936년 11월 10일. 1 If I have wounded any soul today, If I have caused one foot to go astray, If I have walked in my own willful way, Dear Lord, forgive! 2 If I have uttered idle words or vain, If I have turned aside from want or pain, Lest I offend some other through the strain, Dear Lord, forgive! 3 If I have been perverse, or hard, or cold, If 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