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 사진은 없다 2: 1894년 상궁 사진
다음은 1894년 11월 뉴욕에서 발간된 Demorest's Family Magazine에 실린 "The Queen of Korea" 기사이다. 저자는 한국을 방문했던 유명한 기독교인 작가, 여행가, 저널리스트, 사진작가, 지리학자였던 카펜터(Frank G. Carpenter, 1855-1924)였다. 따라서 사진과 캡션은 과장없이 사실 그대로이다. 그의 글은 한국의 왕비에 관한 것이지만, 민 왕후의 사진은 없고, 대원군과 궁중의 높은 상궁, 왕비의 관비, 고위 관료 양반 사진만 있다. 그 중의 한 장이 11월호 표지와 다섯 번째 페이지에 있는 "The Queen's Chief Lady in Waiting"(왕비를 모시는 상궁)이다. 이 사진은 한때 민비 사진으로 알려졌으나, 이 잡지와 언더우드 부인의 ..
평양 1926년 예수교인 통계
평양 1926년 1월과 서울 100년 후 다음 책 평양부, (평양, 1926.10)에 따르면 ● 종교 인구 = 23,149/112,929명 = 20.5% (일본인 중 신도 신자, 불교 신자가 많아서) ● 예수교인 인구 = 일본인 281 + 외국인 경영(장로회와 감리회) 7,404 + 조선인 경영 250 = 7,935 = 7.0% ● 한국인 중 예수교인 = 7,654/88,752명 = 8.6% 1930년대 초반으로 가면 10%가 되고, 소위 "조선의 예루살렘"으로 자랑하였다. 이후 0%로 소멸했다. 교만은 패망의 원인이다. 서울도 한 때 예수교인 30%를 자랑하다가, 이제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 선거 후에 더 감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