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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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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인 국민회 會旗 1910년 5월에 ‘대한인국민회’가 조직되었다. 그 국민회의 회기 사지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깃발의 붉은 빛은 국민의 혈성을, 노란빛은 국가의 평화를, 태극은 역사의 정신을 상징한다. 인민의 혈성으로써 조국의 역사를 평화 중에 옹호하여 태평복락의 영광을 지구상에 현양케 함이다. 이 회기는 블라디보스토크 국민회에 대한 일본 총영사의 1914년 1월 기밀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 기밀 문서에서는 만주와 시베리아에 있는 국민회가 일본과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당시 북간도와 시베리아에서는 상당수 기독교인들(안창호, 이동휘, 정재면, 최관흘, 이강 등)이 애국지사로 국민회를 지도하고 있었다.
1961. 5. 16 직후 기독교 신문 사설 1960년 9월에 창간된 에 실린 1961년 5월 29일, 6월 5일자 두 사설이다. 이 신문은 교단 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정신과 평신도를 위한 신문을 표방한 진보적인 신생 신문이었다. (1964년 7월에 으로 제호 개칭.) 교회 통일과 민족 통일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교회 혁신과 사회 혁신을 추구했다. "5.16 군사혁명"이 발생하자 전후로 3주일 이상 휴간한 후 5월 들어 처음으로 5월 29일자가 발행되었다. 신문은 당연히 혁명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1면을 채웠다. 오른쪽 서문에서 4.19 혁명은 실패했으나 5.16 군사혁명은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혁명을 국가재건의 혁명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는 국가재건위원회의 발표문을 그대로 실었다. 중간에 당시 논의되던 기장과 예장의 합동 운동을 소개하고, 왼쪽..
엑스플로 74 전도대회 김준곤과 조용기의 부상: 유신 체제 지지로 혜택 1974년 복음주의 교회들은 ‘민족 복음화’를 내세우고 ‘총동원 전도’ 방법을 논의한 반면, 에큐메니컬(NCC) 진영은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하며 민주주의 국가를 염원했다. 7월 16일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1차 로잔대회에는 한국에서 조종남, 한철하, 조동진, 김옥길 등 65명이 참석했다. WCC 진영의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의 1973년 방콕대회가 통전적 구원(“온교회가 온복음을 온세계에”)과 상황화 개념을 제시하고 복음이 전파된 나라에서 외국선교사와 선교비를 감축하는 모라토리움을 주장하자, 복음주의 진영에서 활로를 모색한 대회였다.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가 초안한 로잔 언약에 명시된 선교 신학은 복음 전도의 우위성을 확인했으나 사회적 ..
민족 복음화 대성회, 1977년 민족복음화성회준비위원회는 3년간 준비한 후 평양대부흥회 70주년인 1977년 광복절에 서울 여의도에서 77민족복음화대성회(고문 백낙준, 한경직, 대회장 김세진, 위원장 신현균)를 한국인만의 힘으로 개최했다. 대회 표어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한국인에 의해서, 오직 성령으로”가 보여주듯이, 민주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복음전도를 목표로 하였으며, 외국인 강사가 주도한 앞의 두 대회와 달리 “한국인에 의한 자주적인” 부흥회로 신현균 목사가 주강사로 집회를 인도했다. 이에 앞서 전국 300여 곳에 ‘77성회 지구준비위원회’가 조직되어 600여 명의 한국인 강사가 부흥회를 열고 복음화와 비상시국을 위해서 기도했다.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에 이어 1976년 말 당선된 카터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미군 ..
4월 24일의 두 사건 125년 전 4월 24일의 두 사건: 동학운동 녹두꽃이 떨어지고 불교 부흥의 계기가 마련되다 1. 새벽에 동학혁명의 우두머리 전봉전 장군을 처형 (“京城特報 四月 二十四日 特派員發,” 1895년 5월 7일.) 23일 오후 4시 경 사형 선고 후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최영창과 함께 교수형에 처했다. 법무협판 이재정의 판결-법무대신 서광범의 보고-국왕 고종의 윤허로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고등법원 판결은 이 협판과 장박 참의, 일본영사관 우치다 사다츠치(内田 定搥) 일등영사로 구성된 3인 판사들이 내렸다. 당시 교수형은 대개 동대문 밖 남벌원에서 실시했고, 처형된 자의 목은 3일간 서소문 밖에 효시했다. 그러나 전봉준의 경우는 효시하지 않았다. 이에 양반들은 “역적을 목 베어 조리돌리지 않았다”고 개화..
톨스토이의 <부활>과 반사회진화론 고희를 넘긴 1899년 톨스토이는 다가오는 세계 열강의 제국주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지막 대작인 《부활》 연재에 들어갔다. 1895년 까프까즈 지방에 ‘두호보르’ 박해 사건이 일어나 천 여 명의 교도가 살해되었다. ‘두호보르’ (Doukhobors = 영혼을 위해 싸우는 자)는 18세기 중엽부터 러시아정교에 발생한 한 종파로서 원시 기독교의 교의를 엄수하고, 철저한 무저항주의 無抵抗主義와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를 실행하는 한편, 신의 왕국만을 인정하며 국가, 법률, 병역의무 등 지상의 온갖 권위와 법규를 부정하는 종교 집단이었다. 그들의 신념은 톨스토이의 사상--비폭력, 반국가, 반제도 평화주의--과 일치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변하지 않자 정부는 국외 추방을 명했으나, 그들은 캐나다까지의..
Before & After 2: 한국 여성의 변신, 130년 Western Orientalism & Double Orientalism (Japanese Orientalism) 시대는 갔다. 서울을 시궁창에서 돼지가 노는 불결한 비위생의 나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식민지로 만들던 1900년 전후, 그 구시대는 가고 이제 한국이 의료 방역 체계 최고 수준의 나라가 되었다. 여성들도 기생으로 양반이나 수종들던 시대를 지나,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반창고 훈장을 단 간호사들의 여성 투혼의 시대로 바뀌었다. The Hermit Nation 조선이 세계에 우뚝 서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한국 여성 오리엔탈리즘의 종언이다. 188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심지어 오늘까지 한국 "The Land of Morning Calm" and the land of dancing girl..
Before & After 1: 위생과 방역의 변신 130년 위생 오리엔탈리즘의 종언: Western Orientalism & Double Orientalism (Japanese Orientalism) 시대는 갔다. 일본이 서울을 시궁창에서 돼지가 노는 불결한 비위생의 후진 도시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던 1900년 전후, 그 구시대는 가고 이제 한국이 의료 방역 체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중국식 봉쇄와 통제가 아닌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의 참여에 의한 민주적 전염병 관리 체계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민주주의와 방역 선진국의 첨병이 되었다. ---정진호(한동대) 교수: (1) 만일 중국만이 첨단 IT인프라와 그동안 갖추어온 전국민 감시 시스템인 텐왕(天網) 시스템을 가동하여 코로나를 조기 종식시킬 수 있음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서구사회가 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