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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의병 처형 사진 [이 한 장의 사진]흔히 1919년 삼일운동 때 일본군이 한국인을 처형하는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니다. B. L. Putnam Wheal, The Coming Stuggle in East Asia (London: MacMillan, 1909), p. 518에 실려 있기 때문에 1907년 의병전쟁 때 일본군이 의병을 처형하는 장면이다. [이보다 앞서 프랑스 잡지에 1907년 8월 1일자에 실려 있다고 한다.]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나 많은 한국인들이 총살되자, 외국 신문 잡지들은 그 사진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위의 책에 있는 사진을 전재하고 마치 그렇게 한국인들이 잡혀 처형된 것으로 알렸다. 그러나 삼일운동 당시 한국인은 만세 현장에서 총에 맞고 죽었지, 이런 식으로 정식 총살형에..
에스더 쉴즈: 세브란스 간호와 한국간호협회의 산모 세브란스 간호를 세운 에스더 쉴즈 한국 간호의 발전을 위해 40년 간 독신으로 봉사하고 1936년에 은퇴   에스더 쉴즈(Esther Lucas Shields)는 1868년 12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농촌 켈리타운쉽에서 해외선교와 인디언선교를 지원하던 경건한 기독교인 부모 아래 태어나 바르게 자랐다. 1891년 필라델피아종합병원 간호원양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3년간 병자를 간호하던 중, 해외선교 권고를 받고, 부르심이 올 때 가기 위해서 준비했다. 그러나 다시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그냥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던 어느 날, 선교에 대한 설교를 들은 그는 동양의 한 나라에 가서 여성과 어린이를 돕기로 결심하고 바로 뉴욕의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지원서를 보냈다. 쉴즈는 제이컵슨 후임으로 ..
1909 그런 안중근 어머니의 편지는 없었다 1909 안중근 어머니의 그런 편지는 없었다 2018. 8. 19. 15:26 ⓒ옥성득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을 앞둔 아들 토마스 안중근(安重根, 1879. 9. 2. - 1910. 3. 26)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는 다음과 같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대세를 따른다는 것 대세 순응 시세의 변화와 세태의 변천을 따라 가는 소위 진보적 기회주의가 지난 120년 간 한국인의 처세술로 자리 잡았다. ​1. "一進 宣言," 1906년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1905년 전후 일진회(一進會)의 모습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으로 부임한 이후 일진회가 발표한 다음 선언문(1906년 3월 5일자 )에서 보듯이, 문명 진보국을 건설하려면 1) 경제(실업)개발로 먹거리를 늘리고 2) 교육으로 인지를 넓히고 풍속을 개량하는 두 가지 강령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청색 부분인 "時敏世運之變遷"과 "隨世態之進運"이다. 세상 운수가 변천해 가는 것에 그때 그때 민감하고, 세태가 나아가는 모양을 따라가는 적응에 능한 기회주의가 대세가 되었다. 한 마디로 진보의 옷을 입은 ..
1905년 8월 이승만을 일진회 대변자로 보도한 일부 미국 신문은 오보 1905년 8월 4일 극히 일부 미국 신문이 이승만과 윤병구를 일진회 대변자로 보도한 것은 오보였다. (아래 표 첫 칸에서 보듯이 Washington Times나 Morning Post가 오보를 내보내고 두 지방 신문도 그 보도를 받아 게재한 것으로 보인다. 오보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국 상황을 잘 몰라서, 혹은 일본 외교관들의 언론 공작에 의해, 하와이에서 온 윤병구나 위싱턴 디시에서 학생으로 대학 공부를 준비하던 이승만을 한국에 있는 일진회의 대변자로 본 듯하다.)다만 뉴욕 롱아일랜드 현장에서 가까운 브루클린에서 발행된 Brooklyn Daily Eagle은 황제나 정부나 정파를 대변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제출하려고 했다고 바르게 보도했다. 그 다음 날 8월 5일자 ..
가나안 성도 현상 Jumping Out of the Hot Pot2015. 3. 12 ⓒ 옥성득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뛰어 나오지만, 차가운 물에 넣고 온도를 서서히 올리면 개구리는 그 온도에 적응하고 편안하게 되어 결국 삶아져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 Boiling Frog Syndrome) 교훈적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어느 순간 개구리는 당연히 뛰어 나오게 되어 있다. 교회가 불편하거나 뜨거우면 뛰쳐 나가는 게 교인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뜨겁다. 이를 감지하고 조금 빨리 나간 게 청년이나 30-40대다. 과제 1. cooling down. 왜 뜨거운지 분석하고 쿨하게 만들 방책 강구. 과제 2. making new spheres 나간 자들 받아줄 다른 공동체나 공론장 혹은 사적 공간 만들기. 참고논문 Cha..
이승만과 삼일운동 이승만과 삼일운동이승만이 삼일운동을 주동한 것이 아니라, 삼일운동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와이에서 전도인과 교육자로 활동, 1913-1918이승만은 1913년 2월 하와이에 정착한 후, 하와이감리회선교회(HMEC) 선교사로 일하려고 했으나, 1914년 6월 와드맨(John Wadman) 후임으로 친일 성향의 감리사 프라이(Henry Fry)가 부임하자 갈등하게 된다. 이승만은 1913년 9월 호놀룰루 한인중앙학교 교장 직을 맡아 학교를 재편 확대하고, 1915년 7월 국민회 하와이 지부의 지원으로 1916년 초에 3에이커의 땅을 사서 여학생 기숙사도 설립했다. 1915년 10월에는 한인여학원(Korean Girls’ Seminary)도 설립했다. 그러나 프라이는 이승만의 민족 교육, 곧 한국어..
1905년 8월 이승만 윤병구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올린 청원서 1908년에 출판된 맥켄지의 부록에 실린 청원서이 책은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고 번역되어 있으므로 1905년 이승만과 윤병구가 루즈벨트를 만날 때 하와인 한인 대표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미국 일부 신문의 오보를 바탕으로 일진회 대표/대변인 운운하는 기사가 2011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은 1905년 8월 4일 뉴욕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날 때 정장을 한 이승만의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