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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독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오해되는 말] 唯我獨尊 1. 유아獨存이 아니다. 세상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고 뭇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산다. 이웃 없이 내가 없다. 묵자의 겸애 사상에서 말하는 天下無人(천하에 남은 없다 = 모두가 내 몸과 같다), 곧 이웃 사랑을 전제하는 말이 유아독존이다. ​2. 유아독高가 아니다. 다른 사람은 을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다. 교인 한 명은 헌금하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 한 명은 일하는 부품이 아니다. 부목사는 1년용 소모품이 아니다. ​3. 유아독종이 아니다. 내 고집대로, 내 뜻대로 해 놓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는 독종이 아니다. ​4. 유아독尊이다. 내가 나를 높이지 않으면 남도 나를 깔본다. 원래 이 말은 인도 불교의 경전 디가니카야(Diighanikaaya)에 나오는 다음 말..
유치환, "예루살렘의 닭" (1953) 1953년 4월 유치환, "수상록 예루살렘의 닭"에서
2020 올해의 한국교회사 책 온라인서점에 들어가서 올해(2019년 12월- 2020년 11월) 나온 한국교회사 신간이 몇 권이 되는지 확인해 보라. 더 있겠지만 15권 정도이다. 그 중에서 "교회사" 분야로 국한하여 100위 안에 드는 책은 두세 권이 될까. 나머지는 모두 서구 교회사 책들이다. 이래서야 어찌 한국 교회가 방향을 잡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해방 이후를 다루는 본격적인 역사 연구서들이 나와야 한다. 올해는 한국전쟁, 북한교회사, 성서공회사, 통사 등 4권이 해방 이후를 다루었다. 그나마 손정도 목사 전기를 두 은퇴 학자가 출간하여 학계 체면은 지켰다. 3월에 나온 내 책은 세종도서에 선정되고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쓴 는 비매품이지만, 1,2권에 이은 나의 30년 한글 성경 번역, 출판, 반포사 연구의 결..
성결교회 정운학 목사 일대기 만주 심양에서 양떼를 지키다가 숨진 선한 목자 정운학(鄭雲鶴, 1910-1966?) 목사의 일생이다. 일본 유학 중에 개종하다 정운학은 1910년 인천에서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인천상업전수학교에 재학 중 미술에 뛰어난 재질을 보여,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함으로 그는 장차 화가가 되려는 희망을 품었다. 그는 전수학교 졸업과 동시에 평소의 꿈대로 동양의 최고 미술학교인 동경미술학교에 지원, 거뜬히 합격했다. 당시 조선인으로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만큼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차별이 심했다. 그는 동경의 어느 일인의 하숙집에 기거하면서, 학교에 다녔고 그림도 열심히 그렸다. 동료 학생들은 그의 이름 대신에 ‘죠센징’이라고 불렀다. 죠센징은 조선인이란 일어이지만, 멸시하는 이름이었..
한국개신교 해외 타문화선교 시작, 1913년 중국 산동 萊陽 1890년대 서간도 선교, 1903년 하와이 한인 선교, 1908년 제주도 선교, 1909년 동경한인교회 설립, 1909년 시베리아 선교 등은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는 한인 대상 선교였다.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위한 선교였다. 교회는 디아스포라를 따라 간다. 타문화 타언어 외국인 대상 선교는 1913년 조선예수교장로회가 3명의 선교사를 중국 산동 라이양(래양)에 파송하면서 시작되었다. 산동 반도는 조선과 문화가 유사하다. 그래서 지푸에서 활동하던 네비어스 선교사의 선교 방법론도 한국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면서, 선교의 빚을 갚기 위해, 장로교회는 산동에 선교사 3명을 파송하게 된다. 네비어스의 3자 정책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런데 래양이 지금 발음으로..
사회계층과 교파주의, 1972 장로회신학대학원 특강 시리즈 "한국대중과 복음선교"에서 문상희 교수는 “사회계층적 입장에서 본 한국기독교의 성격 분석”을 발표했다. 그 내용이 1972년 3월 18일자에 실려 있다. 여기서 교회를 상류층 교회, 중류층 교회, 하류층 교회로 구분하고, 그 성격을 논하는 부분만 확대해서 보자. 1970년대 초에 벌써 교회가 중산층 교회로 전락하고, 양극화로 인해 사회 실패자들이 신흥종교로 이단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교회의 체질 개선 없이는 이런 계층화와 하층의 교회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예일대 H. Richard Niebuhr 교수의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 (1929)에서 논한 사회계층과 교회 유형을 한국 상황에 적용한 것으로, 니버 교수는 ..
기독교의 공공성/사회성 논의로 족할까? "사회적 목회" / "사회적 교회" / "사회적 기독교" 교회가 침체 쇠락하던 1920년대에 이미 유행했던 대안이다. 1926-29년도 교계 신문이나 잡지를 펼쳐 보라. ​사회 문제---생업 문제, 경제 자립 문제, 실업 문제, 계급 문제, 청년 문제, 여성 문제, 농촌 문제, 노동 문제, 민족 문제, 이민 문제, 술 문제, 공창 문제, 마약 문제, 이혼 문제, 비행 청소년 문제, 자본주의 문제 등등 --를 해결하는 기독교를 엄청 토론했다. 사회의 기독교화를 논하기 전에, 기독교의 사회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1925-29년에에는 기독교의 갱신과 사회화에 대한 요구가 폭발했다. 위는 한 짧은 기고문, , 1927년 2월 16일 영어 책, 일본어 책도 번역 출판하고, 세계 여행도 하고, 동아시아나..
김활란 총장, 이화여대, 1937 [이 한 장의 사진] 이화여대 운영위원회 오직 김활란 총장만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선교사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1941년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강제로 devolution이 이루어져 한국인들에게 선교부 재산을 관리하는 권한이 주어졌다. 해방의 혼란, 한국전쟁의 피해 후, 한국 교회는 지도력 상실로 우왕좌왕 분열 속에 나아갈 방향을 상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