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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나 진보나 관직을 노리는 이유 한국인은 왜 그렇게 관직만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대략 이렇다. 1. 공자는 수백 년 동안 남자의 주요한 의무는 관청에서 군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공자 자신도 3개월 동안 계속 관직에 오르지 못하자 ‘주인이 죽은 뒤 남겨진, 집안에서 키우던 개’처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개가 아니라 공자는 관직에 있을 때라야만 국가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정사에 발언권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관직에 오르는 것을 금지한다고 해도 관직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진정한 종교 또는 가르침의 정식 허가를 얻는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직을 구하러 나설 것인가? 2. 조선에서는 관직만이 개인에게 신사라는 ..
이단의 뿌리: 김백문 초원 김백문(初園 金百文, 1917-1990) 은 김해 김씨 가정에서 아버지 김광조 옹과 어머니 문아지 여사 사이에서 4남 2녀중 차남으로 1917년 10월 19일 경북 칠곡군 안동면 안의동 448번지에서 출생했다. 김백문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직접 쓴 세 권의 책을 보면, 상당한 한문 교육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며, 일제시대 공립학교도 어느 정도 다녔다고 생각된다. 그는 만17세 무렵 형을 만나러 원산 신학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김남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김백문을 수도의 길로 들어서게 이끈다. 그리고 김남도의 소개로 원산 신학산의 창설자인 백남주 목사의 애제자가 되었다. 김백문은 원산 신학산과 장좌동 성주교 생활을 통해 점점 신비주의에 몰입하였고, 1937년 즈..
1942 대동아전쟁 위해 교회 종 헌납 한 번 무너진 교회, 무엇을 못하랴? 1942년부터 교회 종을 적국인 영미 격멸의 탄환 만드는데 써 달라고 헌납. 한 교회가 나서면 충성 경쟁은 이어진다.
1938 일본 이세신궁 신사참배 한국기독교 대표 5인 양주삼, 김종우, 이명직, 홍택기, 김길창 바로 1938년 9월 10일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홍택기와 김길창을 비롯해 이미 신사참배를 하던 감리교회의 양주삼과 김종우, 그리고 친일에 앞장 선 성결교회의 이명직은 그 상으로 열흘간 일본 여행을 한다. 김종우는 일제의 혜택을 하나님의 혜택으로 왜곡했다. 내선일체의 깃발 아래 "완전한 일본주의적 기독신자"로서 이세신궁, 명치신궁, 정국신사 등 일본 내지 신사들을 순례하고 참배했다.
1943. 12. 29 성결교회 해산 1943년 12월 29일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 성결교회는 해산 성명서를 발표했다. 영미 기독교 색채를 제거하고 일본적인 기독교로 재출발하려고 했으나, 성경이나 기독교 교리가 근본적으로 일본 천황제 국체에 맞지 않기 때문에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즉 성결교의 사중복음 중 재림 교리가 일본 국체와 상반되고, 유일신론이 천황숭배와 배치되기 때문에, 전시하에서 황민으로 충성하기 위해서 교단을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1936년 교권파가 교단의 실권을 잡고 개혁파를 제거한 결과였다. 1938년 신사참배의 죄가 가볍지 않았지만, 1939년 기독교 교단 중 가장 앞장 서서 정신총동원성결연맹을 조직하고 제2차중일전쟁을 지지하고 나아가 1941년 태평양전쟁을 지원하다가, 마침내 기독교의 근본 교리까지 부정하는 중죄를 지었..
1939 한국 천주교의 신사참배와 전쟁 지지 1932년 마침내 일본 천주교회는 동경 대주교로 하여금 신사참배가 애국심과 충성을 드러내는 시민적 예식인지에 관해 아니면 신도의 종교의례인지 문부대신에게 정식 회답을 요구하게 하였다. 문부대신은 차관을 통해 신사참배는 시민적 예식 외에 별다른 것이 아님을 통고하였고, 일본 주교들은 이에 근거하여 신자들에게 신사 참배를 허락하였다. 일본 주교들의 결정을 근거로 로마 교황청은 1936년 5월 18일 천주교 신자들은 신사 참배를 해도 좋다는 훈령을 내렸고, 그 사실을 주일(駐日)로마 교황 대사관에 통고하였다. 이에 교황사절 마렐라(Marella)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 신자들에게 "국체명징(國體明徵)에 관한 감상(感想)"이라는 서한을 통해 교황청의 통고를 전달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거의 모든 성직자..
1938년 개성시 종교 통계 1938년 개성시 인구는 약 6만 명이었다. 종교인은 전체 4,646명으로 약 7.7%였다. 이런 정도가 해방 전 한국인의 종교 통계로서 적절해 보인다. 개신교인은 해방 이전 전 인구의 2% 정도였다. 아래 도표와 설명에서 숫자가 일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도표는 아래 도표에 있는 숫자를 바탕으로 재작성했다.
기독교 입문 추천도서 50권 대학생 청년 기독교 입문 추천서: 여러 분들이 추천해 준 책이다. 무순 기독교 입문 1 김영봉, (복있는사람, 2019) 2 존 스토트, (생명의말씀사, 2009) 3 로완 윌리엄스, (복있는사람, 2015) 4 Tim Keller, The Reason for God (두란노, 2017) 5 -----------, The Prodigal God (두란노, 2016) 6 C. S. Lewis, (홍성사, 2018) 7 Greg Gilbert, What is the Gospel? (부흥과개혁사, 2010) 8 D. A. Carson, The God who is There (두란노, 2010) 9 마커스 보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9) 10 김형석, (두란노, 2018) 11 필립 얀시, (IVP,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