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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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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김진홍 인명진 석방 [44년 전 두 분] 1975년 2월 출옥 후 대담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974년 1월 실형을 선고 받고 수원 교도소에서 13 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나와서 한 말씀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34세 인명진 목사, "십자가 고난의 모습이 한국 교역자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31세 김진홍 전도사는 "항상 가난한 자와 함께 하겠다"고 했으나, 출옥 얼마 후 이혼까지 했다. 그리고 44년의 시간이 지났다. 시험 중에 제일 무서운 시험은 세월의 테스트이다. ⓒ 옥성득
1984 혜촌 김학수,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 [성화 감상] "꾀꼬리가 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 혜촌 김학수 그림, 출처: 요한복음, 『선교100주년 기념 성경전서 한글개역판』, 대한성서공회, 1984. 대한성서공회가 1984년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판 성경인 『선교 100주년 기념 성경전서 한글개역판』을 출판할 때 혜촌의 그림 6점을 실었다. 창세기 2점(에덴 동산, 노아 홍수), 출애굽기 1점(홍해를 가르는 모세), 복음서 3점 (마태: 베들레험에 탄생하신 예수, 누가: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 요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예수) 등이었다. 이 그림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유명한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한국화로 표현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거의 마무리되고 동네에 갔던 제자들이 돌아올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여인이 ..
1929 이용도, 거룩한 바보 시므온 이용도 목사, "성자 이야기: St. Simeon the Holy Fool" 이용도 목사의 호는 是無言이다. '거룩한 바보 성 시메온'을 소개하고 그처럼 어리석고, 미치고, 바보처럼, 욕을 먹고 고난을 당하며 예수처럼 살고 전도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높아지려는 시대, 많이 가지려는 시대, 똑똑한 시대, 교권을 차지하고, 자기 영광을 구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는 울면서 침묵하면서 거룩한 바보의 삶을 살았다. 아, 이용도 목사!. 천막에서 설교하는 이용도 목사 李龍道, “聖者 얘기,” , 1929년 10월 16일, 23일 나는 지금 여러분과 얘기를 하자고 나 안젓슴니다. 내 얘기를 듣는 여러분은 열너댓 살로부터 열 팔구 세과 즉 스무살 이내의 분들인 줄 알겟슴니다. 고린도전서 三章 十八절엔가 보면 “지..
1929 교회의 사활 문제 양주삼, “교회 死活問題,” 「기독신보」 (1929년 11월 27일; 12월 4일; 12월 11일)개신교인 1916년 → 1927년에 20만 명 줄어 -7.5% 인구교인수191013,128,780(200,000)1916(14,600,000)279,586192718,661,494259,076 ()안은 추정치 1916년 교인 279,586명이 1927년 259,076명으로 줄어 -7.5% 성장을 보였다. 인구가 약 400만 명 증가할 때, 개신교인은 약 20만 명이 줄었다. 전체 인구에서 교인의 비율은 10년 만에 1.9%에서 1.4%로 감소했다.시대의 변화, 사조의 변화, 청년 세대의 변화 등으로 교회가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라"의무 잃은 교인"(한 때 교회를 나왔으나 이제는 잘 안 나오는 가나안 교인)이 ..
1904 2월 9일 러일전쟁 발발과 인천상륙작전 115년 전 1904년 2월 9일 제물포 전투로 러일전쟁 발발2월 8일 일본 해군이 여순항에서 러시아 해군 기습 공격으로 러일전쟁 시작, 러시아의 주의를 이곳으로 돌리고2월 9일 일본 해군이 제물포항에서 러시아 해군 기습 공격, 정박해 있던 러시아 군함들 침몰시키고, 일본군 3,000명 제물포 상륙 작전 성공, 경인선 기차로 서울로 이동하여 서울 점령.2월 10일 일본 러시아에 선전포고로 러일전쟁 발발. 당시 한국에는 군함 한 척 없었다. 고종과 황실과 지도자들은 나라를 말아 먹고 있었다.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모두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스파이크먼의 림랜드 이론대로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의 각축장이다. 림 랜드에 속하는 한반도는 경쟁하는 두 세력 모..
유홍렬 교수의 <천주교회사>, 1962년 [자유당 정권에 열 받은] 유홍렬 교수의 , 1962년 1962년 출판될 때 마지막 세 페이지 '교회의 승리'에서 호교론적으로 쓰다. 앞 부분은 조선 시대 순교를 호교론적으로 기술하면서 조선을 마구 비판했다. 정부가 교회를 핍박하면 망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추천사에서 노기남 주교도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인의 씨니라"라는 터툴리안의 말을 인용하며 순교 신앙을 강조했다. 서론의 일부: "천주교회(가톨릭 Caholic)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교하신 이래 고금 동서양을 물론하고 가는 곳마다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되풀이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어왔던 것이나, 특히 우리 조선의 천주교회사에서 그 모범을 볼 수 있다. 호사다마라는 말도 있다시피 참된 일에는 방해자도 많았던 것이다. 영원한 진리성은 최후의 월계..
1934 한국 교회 쇠퇴 4대 요인 1934년 초 한국 장로교회와 선교회들이 선교 5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기독신보』는 김택민의 “통계로 본 한국 교회”를 8회 연재했다.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는 선교 희년 대회에 총력을 기울이고 50년 간 성장한 교세와 교회가 사회에 공헌한 것을 자랑했다. 그러나 1920년대의 성찰을 이어 1930년대 초반에도 김택민과 같은 여러 예언자적 비판이 있었다. ​그는 여러 통계 수치를 통해서 일단 교회가 수적(입교인, 헌금액 등)으로나 질적으로(목회자 교육 수준 등)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성장 과정에서 대위기가 발생했으며 그 위기는 다음 네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이후 위기 상황과 유사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성경 신앙이 아닌 강단 신앙(講壇 信仰)...
Korea, the Land of Hats, 1901 1901 모자의 나라 한국챙이 큰 갓은 양반 용이고 사진처럼 패랭이 갓은 상놈 용 그래도 상투에 갓을 해야 어른이여. 갓을 쓰지 못한 놈은 다 아여, 아직 아. 삿갓, 부채, 담뱃대까지 허벌 패셔너블하네. 아직 일제 시대가 아니라 전부 다 흰 옷이 대세여.갓김치가 god김치는 아니듯이, 갓이 god은 아니여. 한국인이 god을 매일 머리에 올리고 섬긴 것은 아니랑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