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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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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왜란 "악질 한국인 친일파 관리" 土倭란 악질 한국인 친일파 관리1908-48년 용례에서 보듯이 토왜의 토는 토착인 곧 한국인을 뜻하고, 왜는 친일파의 뜻이었다. 악질적인 골수 친일파 관리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해방 이후에도 제한적으로만 사용했다. 많은 용례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만 세 가지로 그 뜻을 살펴보자1. 1908년 황현의 1908년 의병들이 고종의 복위와 통감부 철수, 일본인 관리 폐지, 외교권 복권을 주장할 때, 일본어를 하는 한국인 통역관이 무고, 살인, 약탈 등을 일본인(外寇)보다 더 심하게 하므로, 그들을 土倭(토착인 왜구 = 한국인 친일파)라고 했다. 곧 외국인인 왜구보다 토착인 왜구가 더 악질이라는 뜻이다.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6권 > 隆熙 2년 戊申(1908년) ② > 21. 義兵의 投書義兵投書統監府, 要以四..
1948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민주적 합법적 정부 국사 교과서 왜곡 논란, 무엇이 사실인가[옥성득의 역사시론] 1948/50년 유엔총회 결의로 본 대한민국 정부http://www.acropolistimes.com/news/articlePrint.html?idxno=19162013년 11월 06일 (수) 16:31:40 아크로폴리스 UCLA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옥성득 동문(영문 79/국사 84)이 다음 글을 아크로에 기고해오셨습니다. * * * * *한반도의 유일한 민주적 합법 정부최근 명지대 강규형 교수의 글 "歪曲 국사 교과서 修正 거부해선 안 돼"가 10월 23일자에 나오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서울대 박태균 교수의 시론 "유엔의 48년 ‘유일 합법정부’ 승인: 38도선 이남인가, 한반도 전체인가"가 10월 30일자에 실렸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한..
1947년 북한 괴뢰정권이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1947년에는 소련군이 북한에 김일성 괴뢰 정부를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다음은 2018년 통일부가 발간한 이다.매년 발간하는 책으로 누구나 다운로드 받아 읽을 수 있다. https://www.unikorea.go.kr/books/understand/understand/20-24쪽에 북한 정권 수립 역사를 서술해 놓고 있다. 북한은 1945년부터 소련의 지도 하에 북한 단독 정권 수립을 준비했다. 남한이 먼저 단독 정부를 구성한 게 아니다. 북한 괴뢰 정권이 먼저 세워졌다. 1947년에는 헌법까지 만들었다. 1948년 2월에는 김일성이 인민군을 창설하고 3월 조선공산당 대회로 실권을 잡아 정권 수립을 실제적으로 완성했다. 소련은 친탁 통치 기간에 이런 과정을 진행하면서, 한반도에 하나의 정부를 세우자는 U..
1940년 3월 20일 신사참배 가결 후 노회 모습 1940 신사참배 가결 후 노회 모습1938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국가 의례로 규정하고 참배 결의에 이어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총회 결의에 따라 1939년부터 총회, 노회, 교회는 회의나 국경일 등에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다음은 1940년 3월 연화동교회에서 열린 평양 노회 38회 개회 모습이다. 개회 선언 후 교회 마당에서 을 거행한 후 회의에 들어갔다. 애국식은 국기 게양, 국가 합창, 궁성 요배, 묵도 1분간, 국민서사 제창. 만세 삼창으로 진행되었다. "대일본 제국 만세"를 삼창했을 것이다. 이어서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훼절한 교회의 모습이다. 신사참배를 수용한 마당에 다른 애국 행위는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일제에 굴복한 교회는 향후 5년간 무슨 일이 그..
함석헌, 이 나라가 뉘 나라냐, 1970 함석헌, , 1970 In the beginning, there was the Word. (St. John) In the beginning, there was the act. (J. H. Fichte) In the beginning, there was resistance. (Ham Seokheon) In the beginning, there was the Dao. (Gospel of John/ Chinese and Korean translations, 1856, 1882) Hahm moved from resistance to Dao in his later years. 태초에 저항이 있었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생명-자유-저항은 함께 간다.
한기총의 성령 이해 = 전투적 근본주의 한국교회 성령론의 대 위기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2767&fbclid=IwAR02dqRter4ZhV2u_-CihVlCgodq3vEAv355sAiyVExCd6eVR2QDd3BjUVE이 보도대로라면 한기총/전광훈은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1. 방언이 터지고 2. 한기총과 같은 단체에서 돈 나오는 직책만 맡지 않고 3. 귀신을 내어 쫓고 4. 그래서 종북, 동성애,이슬람 세력과 같은 사탄의 세력과 싸워 이기고 5. 바알을 섬기는 타종교인과 더불어 통일 논의도 하지 않지만6. 이단은 받아주고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277..
1908년 3월의 두 사건: 장인환의 스티븐슨 저격과 최병헌 목사의 선유사 활동 1908년 3월의 두 사건: 장인환의 스티븐슨 저격과 최병헌 목사의 선유사 활동 여러 가지를 종합 검토할 사안이나, 일단 캘리포니아에 있던 한인들의 입장은 분명했다. 선유사 활동을 한 서상륜, 최병헌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1908년 3월 선유사 유세 기간인 24일 (한국 시간 25일)에 샌프란시스코에 스티븐슨(Durham White Stevens, 1851-1908. 3. 24)이 도착했을 때, 의병장 이인용이 재외 한인에게 보낸 격문(The Holy War Manifesto)이 함께 도착했다. 그 내용은 "동포들이여, 우리는 일치단결해서 조국에 우리를 바치고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 그대들은 야만스러운 일본인들의 만행을 세계만방에 고해야한다'는 호소에 이어 "일본인들, 그 첩자들, 동조자들, 야만적인 ..
1951 문재린 목사 가족 (문익환) 거제 피란 사진 [이 한 장의 사진]1951 문재린 목사 가족 (문익환) 거제 피란 사진, 장승포 옥포교회 앞 신학교 동창인 거제 진종학 목사가 문 목사를 거제도로 오라고 해서 함께 지냈다. 북간도 영성이 거제도로 와서 거제도가 살았다. 문재인 대통령 가족도 이때 피난을 와서 그가 태어난다. 당시 거제엔 한국 지성과 영성의 최고봉들이 모여 있었다.옥포교회는 어장을 하여 거부가 된 진경삼 집사가 연보하여 1929년 6,500원으로 2층 석조 예배당을 지었다. 거제에서 제일 가는 교회였다. 내 장인 어른이 이 교회 출신이시다. 이 사진에는 오늘 가신 문동환 목사가 미국 유학 중이라 없다. 不在라야 존재의 귀함이 더 다가온다. 없이 계신 하나님처럼.